또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1992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약 28년간을 중간에 몇 달 쉰 적은 있었지만 열심히 했고, 오래도 했습니다. 이번 퇴사의 공식적인 퇴사일은 2020년 2월 29일이지만 남은 연차로 미리 사무실 정리를 하고 나와서 이번 주부터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좋은 날, 힘든 날,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등 여러 가지 날씨와 환경에서 망망대해에서 항해하는 것과 같았던 과거 직장생활과 퇴사에 대한 단상을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 놓으려고 합니다.
나의 여섯 번의 퇴사 이야기 마지막 퇴사이기를 바라며
첫 번째 퇴사 (1998년 12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유달리 좋아해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합니다만, 대학에 입학한 첫날부터, 원래의 꿈은 잊어버리고 아까운 4년을 편하게만 보내고 맙니다.
하지만, 지방대 이긴 하지만 유명 국립대 공대를 나온 덕분에 모 그룹 공채로 입사하여, 몇 달간의 교육을 받은 후에 창원에 있는 비행기 만드는 공장의 IT 부서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그 당시의 IT 부서에서는 프로그램 분석 및 개발하는 인력도 꽤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코볼(COBOL)이라는 다소 비생산적인 컴퓨터 언어로 운영하다 보니 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밤낮없이 주 6일 동안 (그 당시에는 토요일도 오전 근무를 했습니다.)
1995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사 ERP 시스템을 코볼(COBOL) 프로그램에서 클라이언트 서버 환경으로 개편하는 아주 큰 2년짜리 프로젝트가 시작이 되었는데, 테크니컬 파트 리더가 되면서 다양한 기술 지식을 습득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생겼었습니다.
2년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치고 여유를 즐기고 있던 1998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연도가 바뀌게 되면 기존에 개발되었던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를 Y2K 프로젝트라고 하고, 한국 분 몇 명이 Y2K 프로젝트로 미국에 취업이 되어 갔다는 뉴스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집사람과 의논한 결과, 갈 기회가 있으면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는 것으로 결론 내고 미국 취업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1998년 가을 경에 미국의 조그마한 IT 회사에서 Job offer를 받고, 취업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1999년 2월에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구직 내용은 중간 생략)
회사 선후배들과 가족들은 저를 위한 마음으로 좋은 직장을 두고 왜 멀리 미국까지 가느냐는 우려와 좋은 기회이니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라는 격려를 한 몸에 받고 미국으로 갑니다.
1998년 12월,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희망에 찬 마음으로 첫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두 번째 퇴사 (2005년 1월)
미국 뉴욕에 와서 출근한 IT회사는 기대와는 달리 전혀 비즈니스 경험이 없던 회사였고, 미래에도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지 못하겠다는 판단으로, 저와 비슷한 시기에 왔던 5명의 친구들은 미국 현지에서 구직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운이 좋게도 미국 대기업인 통신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좋았던 기억이 정말 많은 회사입니다. 연봉도 많이 주고, 동료들이 좋아서 회사생활도 즐겁고, 무료 학비지원으로 컴퓨터 관련 대학원 석사와 MBA 학위도 취득하여 오늘까지 있게 해 준 정말 좋은 회사였습니다.
MBA를 막 끝낼 무렵, 한국에 있는 모 무선통신회사에서 해외 유학생들 리쿠르팅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여, 채용이 결정됩니다. 이때 제가 내세운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케팅 부서로 일을 하게 해 주면 한국으로 가겠다는 것이었고, 회사에서는 허락을 해주어 결정을 했습니다.
동료들이 준비한 환송 파티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좋은 얘기와 선물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었고 벅찬 감동으로 흘렸던 눈물이 기억납니다. 미국으로 갈 때처럼, 한국으로 올 때에도 이민가방 2개만 들고 귀국을 하게 됩니다.
2005년 1월, 정말 좋은 직장을 떠나는 아쉬움이 크지만, 새로운 업무와 친구와 가족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두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세 번째 퇴사 (2012년 6월)
통신회사에 마케팅실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마케팅실에 직원이 100명이 넘게 있었는데 다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똑똑한 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차장으로 입사를 하였지만 마케팅에 관해서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선후배 들의 도움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직급과 직책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올랐습니다.
2012년 봄 어느 날, 헤드헌터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저에게 정말 잘 맞는 좋은 자리가 있으니 한번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했지만, 바쁘니 다음에 통화하자고 끊었습니다. 그다음 날, 헤드헌트가 또 전화가 와서 회사 근처에 있으니 잠시만 만나 달라고 해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국계 소비재 회사 한국지사의 마케팅 임원인 이사 직급이고, 연봉도 20% 올려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기 직장에서는 10개가 넘는 마케팅 팀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볼 기회에 대한 제약이 있지만, 외국계 회사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임원으로서의 타이틀을 가지게 되며 나중에도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 있겠다는 욕심으로 지원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외국계 회사에서는 마케팅과 디지털을 접목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었고, 두 분야를 모두 경험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제가 해당되는 경력을 가졌기에 3번의 인터뷰를 통과하고 Job offer를 받게 됩니다.
2012년 6월, 미래에 대한 욕심으로 세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네 번째 퇴사 (2013년 12월)
미국계 대기업으로 한국에는 직원이 100여 명, 마케팅에는 7명 정도가 있는 중소기업 수준의 규모였습니다.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직원들 모두 영어도 잘하고 일을 할 때에도 좀 더 프로처럼 하려는 근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태국 등으로 해외출장도 다니고 미국, 싱가포르 본사에서도 자주 한국 방문을 하니 계속 영어도 쓰게 되고, 외국 친구들도 만나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실적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한국 회사처럼 팀워크가 중시되기보다는 개인플레이가 더 많이 있었고, 미래 중장기적 접근보다는 단기적 접근이 우선이었고, 이러한 것들이 저에게는 서서히 불편 해 지고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들과 협심하여 즐거운 직장생활을 하고, 비전을 가지고 회사를 성장시키며, 오랫동안 근무하려던 저의 생각과는 많이 동떨어진 회사라고 생각이 되어 퇴사를 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2013년 12월, 처음으로 나 자신과 맞지 않는 회사라고 생각되어 네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다섯 번째 퇴사 (2015년 3월)
퇴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취업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했었습니다. 학교, 직장 등의 좋은 경력이 있으면 바로 다시 좋은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저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찾으려 하는 포지션은 회사에 하나만 존재하는 자리라 쉽게 자리가 나지 않고, 제 나이가 그때 당시 40대 후반이다 보니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반도체 쪽 회사에서 마케팅실장 포지션이 있었고 면접을 보러 가서 대표이사와 면접 후에 채용이 되었습니다. 뒤에 대표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저의 이력이 반도체 회사에서 필요한 이력과 꽤 차이가 있었지만 저와의 면접 후에 가능성을 보고 채용을 하셨다고 하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여기에서의 일은 기존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오전에는 한국, 일본, 중국 팀과 업무를 진행하고, 오후에는 유럽, 미국 팀과 업무를 진행하니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 대상 B2B 마케팅 업무를 하니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고, 또한 한계에 부딪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15년 1월 헤드헌터로부터 마케팅과 IT 총괄 포지션이 있다고 연락을 받고 헤드헌트를 만났습니다. 해당 기업은 소비자 대상 기업이고 전통 있는 회사라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면접을 보았습니다. 고맙게도 의사결정자 모든 분이 하루에 모여서 면접을 진행했고 Offer를 받았습니다.
2015년 3월, 몇 달 동안 자리를 못 잡고 있을 때, 가능성을 믿고 저를 뽑아준 고마운 회사이지만, 즐겁게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섯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여섯 번째 퇴사 (2020년 2월)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지만 정말 다양한 마케팅이 필요한 회사였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마케팅이 필요한 회사였고, 이에 부응하고 싶어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했습니다. 결과물도 잘 나오고 해서 재미있게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신사업 발굴이라는 새로운 업무도 추진을 했습니다. 벤처 회사를 발굴하여, 엔젤 투자도 진행하고, 투자한 벤처 회사와 외부에 판매할 수 있는 솔루션도 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건의하여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회사도 설립을 했습니다.
저는 투자 회사와 개발한 솔루션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매출이 지지부진했고 2년 동안 적자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임원 들은 기간제로 계약을 하는데 오는 3월 1일이 재계약 날짜였지만, 적자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회사에도 그리고 저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되어 사업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제안을 하고 퇴사 결심을 했습니다.
2020년 2월, 열심히 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아서 여섯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적어 놓고 보니, 28년 동안 여섯 군데의 직장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많이 배우고 즐거운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직장은 저에게 생활을 할 수 있는 금전적 제공, 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 제공, 그리고 즐겁게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제공 해 해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하라는 말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일하느라 바빴고, 퇴근하고는 술자리, 집에 와서는 피곤해서 등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었고, 나중에 생각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 나중이 지금이 되었습니다.
이번 퇴사가 마지막이기를 바라며 앞으로 할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우선은 조금 쉬고 싶습니다. 급하게 해서 좋을 것이 없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마침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스스로에게 얘기합니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딱 한 달만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라고..”
그래서 딱 한 달 동안 떠나보려고 합니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도 찾아보고,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도 지켜보고, 하늘도 자주 쳐다보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책도 좀 읽고,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고, 아무 생각 없이 빈둥거리기도 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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